정기구독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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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購讀).
 
원래 구독은 책-잡지-신문 따위를 구입하여 읽는다는 뜻이다.
정기가 붙으면 정기적으로 구입하여 읽는다는 뜻.
 
요즘 Subscription Commerce라는 용어가 정기구독으로 해석되면서 하나의 Revenue Model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SaaS 솔루션들이 지향하는 '정기결제'와 '정기구독'이 때로는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사업아이템의 특성(Feature)을 고려해서 용어를 선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 옛날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나왔을 때, 영화에 너무 관심있던 나는 이 잡지에 매료되어 '정기구독'을 신청하기 위해 실제 을지로 인근, 이 잡지 발행사까지 직접 찾아가 현금을 내고 정기구독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제공되는 콘텐츠가 밀도가 있었고, 대중성 보다는 예술성이 높은 잡지였다. 이 잡지 때문에 흑백 영화에 매료되어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아픈 러브 스토리도 알게 되었고(이때가 중학생~), 에바 가드너, 잉글릿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가 나오는 흑백영화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경쟁잡지들이 우후죽순 나오더니, 완전히 대중적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면서 정기구독을 끊었던 기억이 난다. 월간 스크린을 정기구독했던 이유는 흑뱅영화를 풍미했던 감독과 주연, 조연들을 제법 맛갈나는 콘텐츠로 조망하고, 제3세계 영화에 대한 관람평, 비평가의 날카로운 영화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별책부록으로 딸려 나오는 거장 영화감독의 일대기와 브로마이드 등이 정기구독을 고집하게 하는 이유였다. 그러다가 완전히 엔터잡지로 포맷변화를 시도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정기구독 모델에서 중요한 단어는 '정기'일까 '구독'일까?
 
대부분 스타트업에게 정기구독이라는 단어는 가입자 중 일부가 매월 정기적으로 결제함으로써 획득되는 안정적 매출액, 캐시 플로우 매니지먼트의 안정성 확보라는 매력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정기'라는 단어만큼 매력적인 수익모델의 원천이 어디있을까!
 
그런데 공급자적인 시각이 아닌, 고객의 시각에서 보면, 정기를 선택한 이유가 '구독'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월간 스크린이라는 초창기, 참으로 재미없음 직한 이 예술성 짙은 잡지를 나는 너무 재밌었고, 인물과 영화콘텐츠를 탐구해나가는 그 여정, 별책부록으로 받아서 전집처럼 모으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던 그 '구독'의 매력 때문에, 기꺼이 1년 치를 한번에 내고 연간 정기결제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연간 정기 결제를 한 구독자에 한해 공짜 영화 티켓을 덤으로 주기까지 했으니!
 
사실, 디지털콘텐츠, 교육, OTT 등 뭔가 스토리 지향적인 서비스 플레이어들이 처음부터 대놓고 정기구독제를 도입했다가 보다는, 편당 과금기반의 구독 형태를 먼저 취하다가 양과 질이라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가 확보되면 '정기'라는 캡을 씌우고, 할인혜택과 부수적 서비스를 패키징해 정기구독자를 양산하는 방향으로 모두 진화해 왔다.
 
구독은 '행위'여서, 반드시 스토리텔링할 만한 마중물들이 비축되어야 한다. 구독의 영역이 콘텐츠뿐만 아니라, 제품(먹거리 포함)과 서비스로 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은, 그 제품과 서비스가 가진 스토리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제품/서비스를 가격이 싸냐 비싸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서비스가 만들어져서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과 그것을 심지어 만드는 사람이 보유한 능력과 히스토리에도 attract 되어 구독이라는 행위에 참여하고, 마음에 들면 정기구독에 올라타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기구독을 염두에 두려면, 콘텐츠-제품-서비스를 구성하는 스토리, 내러티브가 굉장히 탄탄해야 한다.
 
구독이 아닌 단순 정기결제로 승부수를 띄우는 건 쿠팡의 정기배송 서비스 같은 속성이리다. 고관여보다는 저관여일 가능성이 높고, 가성비가 중요하다. 규모의 경제로 압도할 수 있을 만한 공급역량과 마케팅 역량이 또한 중요하다.
노션이나 슬랙처럼 이제 조직 내에 없으면 정말 불편하거나, 드롭박스나 구글 드라이브 처럼 쌓아놓은 저장물들을 이제 어디 옮길데도 없고, 자체 서버를 구축하는 게 더 돈이 많이 들어가, 울며겨자먹기로 인당 정기결제하는 것이 속편한 SaaS에게는 구독에서 엿보이는 특성들이 중요하진 않다. 효율성과 편리함, 가성비가 중요할 뿐.
 
정기결제서비스와 정기구독서비스는 조금 그래서 다르다. 정기구독에는 이미 정기결제의 개념이 들어가 있으나, 구독이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하간, 다시 돌아가 정기구독의 시대다.
 
지금처럼 거의 모든 사업 아이템들에 정기구독이라는 용어가 넘쳐나도록 사용된 적이 없는 듯 싶다. 앞으로 구독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소중한 시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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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벤션랩의 CEO, 경영학박사(MIS트랙-플랫폼 전략). 97년~2004년까지 소프트뱅크코리아의 미디어 계열사인 소프트뱅크미디어를 거쳐 2005년 IT기술전략 컨설팅기관인 로아컨설팅 창업, 이후 2017년 2월 더인벤션랩을 새롭게 설립하면서 이후 본격적으로 액셀러레이터 기관장, 초기 시드투자자로 활동 중이다. 더인벤션랩은 지난 5년 간 100여 개 이상의 플랫폼 및 컨슈머 테크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초기 시드투자를 집행하였다(중기부 TIPS운영사). 김진영 대표는 집닥(구주회수완료), 펫닥( 구주회수완료, 시리즈 C), 얌테이블(시리즈 B),홈마스터(중부도시가스 매각완료), 자란다(구주회수완료, 시리즈 B), 보이스루(구주회수완료, 시리즈 B), 지구인컴퍼니(구주일부회수완료, 시리즈 B), 스토어카메라(시리즈A), 오케이쎄(시리즈 A2), 고투조이(시리즈 A2), 고미(시리즈B) 등 성공적으로 성장하는 많은 플랫폼 스타트업팀을 초기에 발굴하여 초기투자를 주도하였다. 특히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진출하는 다양한 버티컬 플랫폼 분야의 한국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선제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는 공동으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런칭(KB국민카드 Future 9, 신용보증기금 Startup NEST, 웰컴금융그룹 Welcome On-Demand, 현대모비스 M.Start 등), 삼성증권(스타트업 랠리업)을 포함하여 보령제약, 대원, 우미건설 및 국보디자인 등)하여 Corporate Accelerating 및 Open Innovation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국내 액셀러레이터 기관으로는 드물게 코스닥 상장사인 대원-국보디자인 및 우미건설-보령제약 등과 프로젝트 펀드를 결성하여 전략적 시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며, 대기업/중견그룹 사내벤처/애자일 조직의 Business Transformation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